규원사화 진서론? 민족의 위대한 자부심![26화]
초겨울의 서늘한 바람이 창틀을 흔드는 깊은 밤이면, 우리 민족의 잃어버린 거대한 영토와 자존감 을 복원하기 위해 홀로 펜을 들곤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마주할 '규원사화(揆園史話)' 는 단순한 고서 한 권이 아니라, 조선 사대주의의 암흑과 일제의 역사 말살 속에서 살아남은 민족의 심장 그 자체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자는 그 역사를 버리지 말 것이며, 역사를 사랑하는 자는 그 나라를 잊지 말지니라." - 단재 신채호, 조선상고사 저자 - 단재 선생의 말씀처럼, 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은 곧 나라를 지키는 힘이 됩니다. 이 책이 왜 '진서(眞書)' 일 수밖에 없는지, 그 속에 담긴 환국에서 단군 조선까지의 생생한 계보 를 통해 우리 안의 거대한 유전자를 깨워보려 합니다. 규원사화는 우리 민족의 찬란한 '계보'를 복원한 위대한 보물입니다. 조선 초기 수서령의 불길 속에서도, 독립 운동가들의 품속에서도 이 책은 우리 역사의 등불로 살아남았습니다. 1. 역사의 공백을 메운 사투: 수서령과 북애자의 고뇌 우리가 규원사화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5세기와 16세기에 걸친 잔인한 역사 소멸의 과정 을 직시해야 합니다. 조선 건국 초기, 명나라와의 사대 관계를 국시로 삼았던 집권층에게 우리 민족이 대륙을 지배해 왔던 기록은 '치워야 할 걸림돌' 이었습니다. 세조 3년(1457년)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조선 조정은 '수서령(收書令)' 을 내려 민간에 숨겨진 고대 사서들을 샅샅이 뒤져 압수했습니다. '삼성기', '단군기' 등 우리 상고사의 맥이 담긴 책을 숨기는 자는 극형에 처해졌고, 그렇게 수거된 책들은 왕실 비서각에 갇히거나 불태워졌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민족의 위대한 상고사 기록은 약 200여 년간 거대한 공백 으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