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금팔조? 법의 차가움 속 뜨거운 약속![3화]
1. 야생의 시간을 넘어, 약속의 시대로
바람 거친 만주 벌판과 한반도의 대지 위에, 우리 민족의 첫 나라 '단군 조선'이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함께 나누었던 단기 원년의 약속, 그 거대한 포효를 기억하시나요?
하늘이 열리고 곰이 사람이 되는 신화의 시간을 지나, 이제 인간은 비로소 '사회'라는 것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싹트기 마련입니다.
내 것을 지키려는 욕망과 타인을 향한 분노가 뒤엉키던 혼란의 시대.
단군왕검께서는 이 거친 야생의 에너지를 문명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백성들에게 하나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가두고 억압하기 위한 쇠사슬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안전하게, 그리고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 바로 '8조법(범금팔조)'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딱딱한 법전의 한 페이지가 아닌, 그 행간에 숨겨진 선조들의 치열했던 삶과 서로를 지키려 했던 뜨거운 마음을 읽어보려 합니다.
2. 세 가지 조항, 그 안에 담긴 삶의 풍경
안타깝게도 8개 조항 중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단 3개뿐입니다.
하지만 이 세 문장만으로도 우리는 단군 조선이 얼마나 고도화된 문명사회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지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금하는 법 8조를 만들었다. 그것은 대개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갚는다. 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 용서 받고자 하는 자는 한 사람마다 50만 전을 내야 한다."
- 중국 역사서 『한서(漢書)』 지리지 -
이 짧은 기록을 통해 우리는 4천 년 전의 거리로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첫째,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언뜻 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처럼 냉혹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법의 본질은 처벌이 아닌 '생명 존중'에 있습니다.
부족 간의 전쟁과 약탈이 일상이던 시대, "사람의 목숨은 하늘과 같다"는 선언은 혁명이었습니다.
또한, 농경 사회에서 한 사람의 노동력은 곧 가족과 마을의 생존과 직결되었습니다.
둘째,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갚는다."
이 조항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단순히 "너도 똑같이 맞아라"가 아니라, '곡식(경제적 가치)'으로 배상하게 했습니다.
이는 단군 조선이 이미 잉여 생산물이 존재하는 사회였으며, 사유 재산을 철저히 인정했음을 보여줍니다.
셋째,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되, 50만 전을 내면 용서한다."
가장 논란이 되면서도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조항입니다.
노비가 존재했다는 것은 계급 사회였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50만 전'이라는 희망의 구멍을 열어두었습니다.
"죄는 밉지만,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사회에 빚을 갚는다면 다시 우리 이웃으로 받아주겠다"는 회복적 정의가 숨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 법 조항 (내용) | 담겨 있는 사회 모습 | 핵심 가치 (현재의 해석) |
|---|---|---|
| 살인자는 사형에 처한다 | 생명 중시, 노동력 보호 | 생명 존엄: 너의 삶이 귀하듯 타인의 삶도 귀하다. |
| 상해 입힌 자는 곡식 배상 | 농경 사회, 사유 재산 인정 | 책임과 존중: 타인의 노동력을 훼손한 대가를 치러라. |
| 도둑질한 자는 노비 (50만 전) | 계급 사회, 화폐 사용 | 회복과 기회: 죄의 무게는 무거우나, 갱생의 길은 열려있다. |
3. 시대를 넘어 흐르는 '유전자'의 힘
놀라운 것은 단군 조선이 심어 놓은 이 법의 정신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우리 민족의 유전자 속에 깊이 각인되어 이어져 왔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2화, 백 일, 어둠을 뚫은 유전자 은근과 끈기가 웅녀의 신화에서 증명되었듯, 법의 정신 또한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단군 조선의 "배상하라"는 정신은 훗날 부여와 고구려의 '일책십이법(一責十二法)'으로 계승됩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면 12배로 갚게 했던 이 강력한 규율은, 단순히 범죄자를 감옥에 가두는 것을 넘어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실질적으로 회복시켜 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현대 법률에서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을 보장하는 민사적 기초와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또한, "생명은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단군의 가르침은 조선 시대로 이어져 '삼복제(三覆制)'라는 꽃을 피웁니다.
아무리 극악한 사형수라도 억울함이 없도록 세 번까지 재판을 받게 했던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
그 뿌리에는 바로 4천 년 전, 아침의 나라를 열며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라"고 외쳤던 홍익인간의 철학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법은 차갑지만, 그 안에 담긴 약속은 뜨겁습니다.
나의 소중함을 알기에 당신의 소중함도 지켜주는 것.
그것이 4천 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품격입니다.
4. Q&A: 역사가 묻고 우리가 답하다
Q1. 왜 '고조선'이 아니라 '단군 조선'이라고 하나요?
A1. 흔히 쓰는 '고(古)'자는 후대의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거나, 우리 역사를 옛날이야기로 축소하려는 의도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역사의 정통성과 자주성을 나타내는 정확한 명칭은 시조의 이름을 딴 '단군 조선'입니다.
Q2. 50만 전은 지금 가치로 얼마인가요?
A2. 정확한 환산은 어렵지만, 당시 평범한 사람이 평생을 모아도 갚기 힘든 거액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화폐 경제가 발달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의미합니다.
Q3. 법이 너무 가혹했던 건 아닌가요?
A3. 현대의 시각에서는 가혹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초기 단계에서 무질서를 잡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고 명확한 규칙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이는 억압이 아니라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습니다.
Q4. 여성을 위한 법은 없었나요?
A4. 8조법 중 "부인들은 정숙하여 음란하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함께 전해지기도 합니다.
이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가정의 질서와 도덕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Q5. 이 법이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는?
A5. "함께 살아가자"는 메시지입니다.
새 해 '꿈'을 펼칠 가장 완벽한 캔버스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단군 조선의 법은 '기본을 지키는 삶'이 가장 단단한 미래를 만든다는 지혜를 전해줍니다.
4,358년 후, 오늘 우리에게 남은 약속
단군 조선의 8조법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닙니다.
"사람을 사랑하라"는 그 뜨거운 외침은 오늘날 우리의 양심과 도덕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법 없이도 지켜지는 당신의 양심과 따뜻한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든든한 8조법이 되어줄 것입니다.
지친 하루 끝, 혹시 마음이 흔들린다면 한 해의 끝에서 나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를 생각하며, 또는 자존감 잃지 않는 마음 습관을 되새기며 자신을 단단히 붙잡아 보세요.
우리는 4천 년의 지혜를 품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멋진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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